자료실
글 수 103
지난달 26일 자이언트 이글클래식대회 2라운드가 끝난 뒤 나는 5명의 미국선수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모두 예선탈락 (컷오프) 한 선수들이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예선탈락 후 짐을 꾸리는 선수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도 몇번 예선탈락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비참한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줘 어서 빨리 대회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모두 경쟁자지만 필드 밖에서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아니겠느냐" 며 매니저에게 예선탈락한 선수들을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매니저는 5명의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쟤가 당신을 닮아 저렇게 사람들을 챙긴다니까…" 하며 아버지에게 괜한 핀잔을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동정심이 많으시다.
게다가 대단한 기분파다.
내가 우승하는 날이면 건수를 잡았다 하고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동네잔치를 벌이곤 하셨다.
연습 라운드가 잘 풀린 날에는 유성골프장 직원들을 모두 집합시켜 놓고 음식을 배달시켰다.
그런 날은 나와 골프장 직원들은 정말 포식을 했다.
당장 주머니가 텅텅 비어도 아버지는 내 사기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정말 끝내주게 기분을 냈다.
나는 아버지처럼 배짱이 크진 않지만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는 느낌이다.
저녁을 먹으며 선수들과 서로의 고충을 얘기하고 수다를 떨다보면 내가 가장 어린데 한참 선배격인 사람처럼 격려를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유성골프장에서 함께 훈련했던 후배들 얼굴도 떠올랐다.
잘 대해줄 수도 있었는데 훈련만 시켰지 따사롭게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악명높은' 선배였다.
후배들이 훈련에 게으름을 부리거나 몸을 사리면 가차없이 기합을 줬다.
내가 받은 혹독한 훈련 때문인지 나는 후배들에게도 그만큼의 훈련을 요구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함께 라운드를 하지 않거나 연습에 끼워주지 않았다.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애들이 왜 안 하는 거지" 하며 나는 후배들을 다그쳤다.
어느날 아버지가 "너, 후배들한테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며 넌지시 말씀하셨다.
어떤 학부형이 아버지에게 "세리가 기합을 너무 세게 준다" 며 "좀 말려달라" 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특히 생각나는 후배가 있다. 우리 옆집에 살았던 장정 (유성여고 3학년) 이다.
동생과 친구여서 더 관심이 생겼다.
함께 연습할 때 보면 눈빛이 남달랐다.
오기와 투지가 있어 보였다.
장정은 내 기합과 잔소리가 지겨웠는지 나를 따르지 않았다.
우리는 1년동안 외면했다.
장정은 아마 나를 벼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 장정은 마음을 독하게 먹어서인지 지난해 8월 일시 귀국해 화해하고 같이 라운딩을 해보니 기량이 많이 향상돼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한국여자오픈에서 여고생으로는 처음 우승했다고 한다.
참 대견스럽다.
돈을 많이 벌면 이런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
모두 예선탈락 (컷오프) 한 선수들이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예선탈락 후 짐을 꾸리는 선수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도 몇번 예선탈락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비참한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줘 어서 빨리 대회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모두 경쟁자지만 필드 밖에서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아니겠느냐" 며 매니저에게 예선탈락한 선수들을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매니저는 5명의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쟤가 당신을 닮아 저렇게 사람들을 챙긴다니까…" 하며 아버지에게 괜한 핀잔을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동정심이 많으시다.
게다가 대단한 기분파다.
내가 우승하는 날이면 건수를 잡았다 하고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동네잔치를 벌이곤 하셨다.
연습 라운드가 잘 풀린 날에는 유성골프장 직원들을 모두 집합시켜 놓고 음식을 배달시켰다.
그런 날은 나와 골프장 직원들은 정말 포식을 했다.
당장 주머니가 텅텅 비어도 아버지는 내 사기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정말 끝내주게 기분을 냈다.
나는 아버지처럼 배짱이 크진 않지만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는 느낌이다.
저녁을 먹으며 선수들과 서로의 고충을 얘기하고 수다를 떨다보면 내가 가장 어린데 한참 선배격인 사람처럼 격려를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유성골프장에서 함께 훈련했던 후배들 얼굴도 떠올랐다.
잘 대해줄 수도 있었는데 훈련만 시켰지 따사롭게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악명높은' 선배였다.
후배들이 훈련에 게으름을 부리거나 몸을 사리면 가차없이 기합을 줬다.
내가 받은 혹독한 훈련 때문인지 나는 후배들에게도 그만큼의 훈련을 요구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함께 라운드를 하지 않거나 연습에 끼워주지 않았다.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애들이 왜 안 하는 거지" 하며 나는 후배들을 다그쳤다.
어느날 아버지가 "너, 후배들한테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며 넌지시 말씀하셨다.
어떤 학부형이 아버지에게 "세리가 기합을 너무 세게 준다" 며 "좀 말려달라" 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특히 생각나는 후배가 있다. 우리 옆집에 살았던 장정 (유성여고 3학년) 이다.
동생과 친구여서 더 관심이 생겼다.
함께 연습할 때 보면 눈빛이 남달랐다.
오기와 투지가 있어 보였다.
장정은 내 기합과 잔소리가 지겨웠는지 나를 따르지 않았다.
우리는 1년동안 외면했다.
장정은 아마 나를 벼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 장정은 마음을 독하게 먹어서인지 지난해 8월 일시 귀국해 화해하고 같이 라운딩을 해보니 기량이 많이 향상돼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한국여자오픈에서 여고생으로는 처음 우승했다고 한다.
참 대견스럽다.
돈을 많이 벌면 이런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
박세리의 그린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Kapires
HOF
푸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