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자. "

올랜도 집에 있는 내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글씨다.

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 이런 다짐을 써붙여 놓고 매일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올해 한 일이 역사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나로서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바라왔던 소원이 점점 현실화되는 것 같다.

어제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세리야, 아주 기쁜 일이 생겼어. 아 글쎄 말여, 유성구청에서 우리가 살던 집을 영구보전하기로 했대. "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흥분돼 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우리집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전시유성구장대동에 있는 집이다.

솜틀집에 딸린 여러 개의 방 중 한 칸에 세들어 살았다.

작고 보잘것 없지만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어린 곳이다.

아버지는 그 집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손을 가슴에 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하신다.

왜냐하면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섯 살 때였다고 한다.

옆집 아저씨가 집 근처 상신개천으로 나를 데리고 놀러가셨다가 내가 물에 빠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물이 꽤 깊었는데 물에 빠져 다 죽어가는 나를 간신히 꺼내 살려냈다고 한다.

아저씨는 내가 정신이 든 것 같아 삶아놓았던 닭 한 마리를 주었는데 반 마리를 훌쩍 먹어치우고는 다시 쓰러지더란다.

그때도 나는 먹보였나 보다.

아저씨는 요즘 아버지를 만나면 "내가 세리의 진짜 은인이여" 하며 농담을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세리는 절대 그때 죽을 애가 아니었어" 하며 내 손금 얘기로 받아치신다고 한다.

한 스님이 한일 (一) 자의 굵은 선이 손바닥을 관통하고 있는 내 손금을 보더니 "장차 큰 인물이 될 것" 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옛집에 살던 때 얘기만 나오면 줄줄이 사탕이다.

내가 돌도 안돼 8개월째부터 걸었다는 얘기, 다섯살 때 동학사에 데리고 갔는데 다른 애들은 다리 아프다며 업어달라고 칭얼댔지만 나는 아무 불평 없이 끝까지 걸어올라가 어른들이 다들 놀라워했다는 얘기 등.

언젠가 밝혔듯 내가 골프채를 잡은 것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2년 때인 94년 골프에 대한 가치관에 변화가 왔다.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연일 섭씨 37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됐다.

아버지와 나는 당시 낮 12시만 되면 유성골프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어떠한 기후조건도 견뎌내야 한다" 며 일부러 가장 더운 시간대를 택했던 것이다.

섭씨 37도가 넘는 날씨에 잔디 위에 서있으면 한증막이나 다름없다.

내리쬐는 햇볕과 지열 때문에 숨이 탁탁 막힐 지경이었다.

라운드를 끝내고 나면 온몸은 소금투성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물었다.

"세리야, 너 정말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으냐. "

"아니오.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고 싶어요. "

그때부터 내 가슴 속에는 세계무대 진출의 꿈이 싹텄다.

어쨌든 우리 식구가 살던 집을 영구 보전하고 관광단지화하려는 장기계획도 있다고 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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