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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03
1998년 스포츠 서울에 연재된 글입니다.
세계여자프로골프 최고중의 최고가 된 박세리.
최근까지 박세리의 스승은 바로 아버지 박준철씨(48)였다.
그가 딸을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프로골퍼로 성장시켰을까.
스포츠서울은 박준철씨에게 의뢰, 오늘의 박세리가 있기까지 수기를 연재한다.
세리가 LPGA타이틀을 쥐는 순간 TV화면속으로 들어가 장한 내딸을 껴안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세리는 내딸이 아닐 수도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우승순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고 취재하기 위해 방안을 메운 보도진때문만은 분명 아니었다.
대회기간중 미국언론들이 연일 세리를 타이거 우즈와 비교했을때 꿈이 아니기를 바랬다.
세계골프 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골퍼로 평가받는 타이거가 내 딸과 비교가 되다니!
세리가 과연 내딸일까.
아니, 앞으로도 내딸이 될 수 있을까.
이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신문 방송의 보도는 내가 감당할 수준을 훨씬 넘어버렸다.
세리는 우리 국민의 딸로 변해버린 것같았다.
지난 4개월여 나는 평생 가장 긴 나날을 보냈다.
미국LPGA투어 데뷔전인 1월 헬스사우스 이너규럴대회부터 지난주까지 출전한 9개대회에서 단 한번도 10위이내에 든 대회가 없었다.
그때마다 세리와 나는 국제전화에서 서로가 “걱정할 것없다”고 말했지만 심정은 정반대임을 우리 부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세리 단 한명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은 삼성물산 아스트라관계자 분들에게 더이상 볼 낯이 없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
아스트라측으로부터 “세리를 당분간 국내에서 쉬게하는게 어떠냐”는 ‘경고’를 전해들은건 지난 9일이었다.
아스트라 안호문이사가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4일 끝난 타이틀홀더스챔피언십에서의 공동 43위 기록(287타)은 ‘세리의 슬럼프’로 단정짓는다해도 할말이 없었다.
경기장이던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LPGA인터내널코스는 바로 6개월전인 지난해 10월
세리가 올시즌 시드권을 주는 퀄리파잉스쿨이 벌어졌던 경기장.
우승했던 그때 기록이 278타였다.
물론 같은 코스에서 하루가 지나더라도 스코어가 크게 변하는게 골프라지만
데이토나비치는 지난해 세리가 데이비드 리드베터로부터 집중훈련을 받았던 올랜도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홈코스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테네시주까지 날아가 치르는 사라 리클래식의 결과는 보나마나로 여길만했다.
안이사는 ‘세리팀’의 총책임자였지만 나를 위로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이 세리의 부진을 분석해보라고 지시했다”며 “계속 성적이 나쁜데 국내로 불러들여 당분간 쉬게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 전했다.
한국의 ‘세리팀’분위기는 대단히 침울했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세리팀’을 잠시 소개하면 안이사를 단장으로 실무총괄 정환식과장, 지원업무 및 의류용품 김동석대리,김경호씨, 디자이너 백규현씨. 여기에 미국에는 매니저인 미국골프기자출신 길성용씨, 캐디 제프 케이블, 그리고 티칭프로 데이비드 리드베터다.
세리와 나까지 포함하면 10 명이 되는 셈이다.
세리가 미국에서 ‘철수’한다면 세리팀은 자동적으로 가동이 중단된다.
“그럴리가 없다. 내딸은 분명 해낼거다.”
시간을 벌어야했다.
안이사에게 “이번대회(사라리클래식)가 끝날때까지 결정은 하지말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세리팀은 그래서 사라리 클래식이 끝나는 날인 11일 하오에 다시모이기로 했다.
11일 새벽 테네시주의 경기장에서 세리를 줄곧 따라다니던 길성용매니저에게서 걸려온 성적은 공동 32위.
이어 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속상해요. 엄마 언니 모두 보고 싶어요.”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려했지만 쌀 한톨이 커다란 돌멩이같았다.
대전 유성집에서 서울의 아스트라사무실로 올라오는 그때의 심정은 사형장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세리였다.
그 시간에 세리는 언제나 나에게 전화를 했으니까.
대답이 없었다.
“세리지? 애비다. 말해봐.”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딸은 울고 있었다. 누구 앞에서도 절대로 울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찢어졌다.
세리는 남들 앞에서 최근에 운 적이 없다.
중학 2학년때까지는 자주 울었다.
그때마다 나는 매몰차리만치 내 사랑하는 딸을 마구 때렸다.
“우는 것은 나약한 거야. 나약하면 절대로 제1인자가 되지 못해.”
‘세리의 눈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나중에 자세히 밝히겠다.
다시 서울로 가는길.
나는 전화에서 세리의 눈물을 느끼는 순간, 또다시 용기를 얻었다.
‘한국의 세리팀’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강력히 건의했다.
아니 그것은 절규였다.
“세리는 잘 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세리팀)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세리는 아직 미국의 환경에 적응이 안됐습니다. 내 딸은 외롭습니다. 향수병에 걸려 있어요. 시간을 주십시요.”
아스트라측도 상당한 분석을 한 것 같았다.
안호문이사가 무릎을 치며 “맞습니다. 세리는 외로웠을 겁니다.
아버지가 달래 주십시요. 그게 해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헤어졌다.
이번 LPGA선수권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내 자신은 LPGA선수권에서 세리가 10위권에 들 것이란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다.
다음날(12일) 세리와 통화했다. 2시간여에 걸친 부녀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였다.
세리에게는 언제나 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 때 처음으로, 사실은 너무 급하고 간절해서 하소연하듯 말했다.
세리에게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신적인 안정, 골프에서 말하는 마인드컨트롤이었다.
“세리야! 내딸아! 피곤한데 무슨 골프를 죽기살기로 할거냐. 2000년이 지나서도 충분해. 아빠는 전혀 걱정안해.
컷오프에서 탈락하기를 이 아빠는 오히려 원한단다. 빨리와서 아빠와 아주 조용한 숲속에서 정답게 놀자꾸나. 낚시질도 하면서….”
세리는 또 말이 없었다.
울고 있었을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애비의 감으로 세리의 마음속에 외로웠던, 보고싶었던 아빠와 가족의 사랑이 전달됐음을 느꼈다.
LPGA선수권을 제패하기 직전까지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박세리의 가장 큰 단점은 퍼팅”이라면서
“프로세계에서 퍼팅이 해결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수없이 지적했다.
TV중계를 유심히 관찰한 분들이라면 세리의 퍼팅때 그립이 크로스핸드형이란 것을 보았을 것이다.
보통 그립은 우선 왼손으로 쥔다음 오른손으로 왼손보다는 그립아래를 감싸는 형태의 역오버래핑형인데 반해 세리는 정반대로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는 형태다.
세리의 세번째 LPGA투어인 하와이오픈때 나는 하와이까지 날아갔었다.
예선 탈락.
그때 세리의 퍼팅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는데 폴로스루때 오른쪽 손목이 꺾이는 것이었다.
헤드업을 안해도 헤드업을 한 모양이었다.
1,2라운드때 3퍼팅을 무더기로 범하는 모습에 미칠 것 같았다.
당장 크로스핸드형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세리는 너무 어색해 했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이것이 이후 몇개대회에서 퍼팅난조를 보인 원인이었지만 세리에게는 이 타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게 LPGA선수권대회 기간중 절박한 상황에서 헤드업형태를 방지해주는 효과를 거뒀다고 본다.
스포츠서울 독자여러분들은 이번 LPGA선수권대회때 최고의 승부처가 어디였다고 보시는지-.
나는 3라운드 18번홀(파4) 파퍼팅과 4라운드 16번홀(파5) 에서의 세컨드샷 순간이라고 본다.
3라운드 17번홀에서 세리는 보기를 범하면서 영국의 리자 해크니와 공동선두가 됐다.보기를 범한 순간 나는 TV화면에서 세리의 당황하는 모습을 읽었다.
18번홀 단 1m30㎝의 내리막 옆경사 파퍼팅때 예비스윙이 빨라졌다.
세리의 심장박동이 평소보다 적어도 10번 이상은 더 뛰는 상황.
나는 “틀렸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들어갔다.
10여분뒤 세리가 현장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우리 부녀는 이구동성으로 “우승이다!”고 외쳤다.
그때 나는 너무 흥분해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었을 실언을 하고 말았다.
“4라운드때는 더 밀어부쳐라. 스윙을 더 빨리, 드라이버샷을 더 멀리 보내 거라.
큰 대회에선 마지막 16∼18번홀에서 승부가 갈린다. 선두는 불안해서 파 플레이로 안전하게 가려하다 미스가 나고
추격자는 오로지 핀만을 노리는 공격적 플레이가 성공했을때 선두가 뒤집히는거야.”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바로 다음말-.
세리는 그때 3라운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다.
최후의 라운드를 몇시간 앞둔 가장 예민한 순간이었다.
나는 세리의 우승을 위한 고비는 3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의 파퍼팅 성공때 이미 종료됐다고 단정했다.
때문에 그 대회 하이라이트인 16, 17, 18번홀에서 ‘한국의 박세리’가 세계정상의 챔피언이란 점을 과시하고 싶었다.
“16번홀(465야드)에선 2온을 시켜 이글찬스를 만들어라. 너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과시하렴. 단 왼쪽러프가 위험하니 어드레스때 오른쪽 발을 10㎝앞으로 내밀어 페이드볼(볼이 낙하때 오른쪽으로 약간 휘는 구질)을 구사하는게 안전하다….”
16번홀 티샷때 세리는 2위인 해크니에 2타나 앞서있었다.
세리는 내 지시대로 오른발을 10㎝쯤 앞으로 내미는 페이드샷을 구사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왼쪽을 겨냥한 탓에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휘기는 했으나 왼쪽러프(B러프)를 1m 남짓 남기고 처박히고 말았다.
남은거리 210야드.
미국의 러프는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10㎝도 넘는 잔디는 골프채를 감아버릴만큼 질기다.
감겼다하면 겨우 100야드 날아가고 악성 훅, 슬라이스가 난다. 2,3타는 순식간에 까먹는다.
오,하나님.
캐디인 제프 케이블이 2온은 틀린 것으로 보고 안전한 탈출로 파플레이를 하도록 아이언을 꺼내주는데도 세리는 이를 무시하고 우드(5번) 를 집어드는게 아닌가.
“안돼 세리야! 내가 한말 취소할게! 아이언을 잡아!”
지구의 반대편 유성에서 TV를 향해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세리가 러프에서 예비스윙을 하는데도 5번우드의 헤드가 풀에 감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 찰라 세리가 뒤를 힐끔 돌아다 보았다.
불안할때 보이는 행동이다.
아버지가 언제나 곁에 있었으니까 아버지 모습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그래, 세리야. 내가 보였지? 쳐봐. 넌 해낼거야.”
퍼펙트샷.
풀에 잠긴 볼이 세차게 맞는 순간 무서운 잔디결을 굴복시키듯 옆으로 *이며 미끄러져 솟구쳤다.
2온. 이글찬스.
세리의 오른손 주먹이 하늘을 향해 불끈 올랐다.
우승이 날아가버릴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었던 상황.
그건 이 애비를 위한 샷이었다.
그 녀석은 그 상황에서도 나의 지시와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리의 16번홀 이글퍼팅은 성의가 없었다.
국내의 시청자들도 느끼셨을 것이다.
‘OK거리’에 접근시키는 아마추어적인 퍼팅이었다.
모든 상황이 사실상 종료된 까닭이다.
간단한 버디.
11언더파로 2위인 해크니와는 3타차로 벌어졌다.
이제 세리는 구름처럼 에워싼 갤러리들을 위한 ‘서비스’만 걱정하면 됐다.
여기에 속속 우승을 확신하는 소식이 들어왔다.
8언더파로 치고 올라오던 도나 앤드류스가 마지막홀에서의 파장면이 비춰졌다.
“공동2위는 하겠군….”
이날만 6언더파, 합계 7언더파의 무서운 기세의 캐리 웹도 17,18번홀에서 각각 3m,4m의 버디퍼팅에 실패해 2위권에서도 탈락.
우승의 희미한 걸림돌마저 완전히 치워졌다.
17번홀(파3) 팅그라운드에 들어서는 딸의 모습은 여유와 예의바른 한국색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3라운때 보기를 범해 해크니와 공동선두가 됐던 그 홀 .
144야드. 7번아이언이었다.
세리는 그 거리의 아이언샷 연습을 수십만번은 했을 것이다.
이미 마음도 안정된 상황.
홀컵 7m옆으로 비껴 멈췄고 약간의 헤드 업도 곁들인 버디퍼팅은 10㎝의 오차가 있었을뿐이다.
파.
18번홀에 들어섰을때 나는 또다른 걱정이 앞섰다.
나와 세리가 이 세상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수없이 꿈만 꾸었던 현실이 바로 눈앞에 너무도 빨리 펼쳐진 현실앞에서 세리는 어떤 제스처를 펼칠까.
가장 한국적이었으면 좋을텐데.
399야드의 파4홀.
드라이버샷을 220야드 날렸다.
약간은 덜 나간 거리.
세리는 전혀 흥분된 상태가 아니었다.
92년 세리가 여중(갈마여중) 3학년때 라일앤스콧오픈에 출전해 당시 아시아스타출신 선배 원재숙프로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첫 오픈대회 우승했을때 세리의 연장전에서의 드라이버샷은 260야드는 족히 날아갔었다.
지나치게 흥분했던 탓이다.
우승을 눈앞에 두면 스윙이 빨라지게 마련인데 세리의 18번홀에서의 ‘우승스윙’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교민들의 태극기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고마우신 분들! 나도 흥이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20㎝의 우승 파퍼팅을 남겼을때 세리는 마치 우승을 한번도 안해본 것처럼,
한국에서 날아온 너무 착하고 순진한 촌색시처럼 볼앞에서 엉거주춤 손을 떠는 자세를 취했다.
“오, 잠깐 세리. 넌 챔피언이야.”
세리보다 열살 언니 해크니가 자신이 먼저 홀아웃하겠다며 비켜서게 했다.
“저런 것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에게 고맙다고 속으로 연신 외쳤다.
세계여자프로골프 최고중의 최고가 된 박세리.
최근까지 박세리의 스승은 바로 아버지 박준철씨(48)였다.
그가 딸을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프로골퍼로 성장시켰을까.
스포츠서울은 박준철씨에게 의뢰, 오늘의 박세리가 있기까지 수기를 연재한다.
세리가 LPGA타이틀을 쥐는 순간 TV화면속으로 들어가 장한 내딸을 껴안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세리는 내딸이 아닐 수도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우승순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고 취재하기 위해 방안을 메운 보도진때문만은 분명 아니었다.
대회기간중 미국언론들이 연일 세리를 타이거 우즈와 비교했을때 꿈이 아니기를 바랬다.
세계골프 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골퍼로 평가받는 타이거가 내 딸과 비교가 되다니!
세리가 과연 내딸일까.
아니, 앞으로도 내딸이 될 수 있을까.
이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신문 방송의 보도는 내가 감당할 수준을 훨씬 넘어버렸다.
세리는 우리 국민의 딸로 변해버린 것같았다.
지난 4개월여 나는 평생 가장 긴 나날을 보냈다.
미국LPGA투어 데뷔전인 1월 헬스사우스 이너규럴대회부터 지난주까지 출전한 9개대회에서 단 한번도 10위이내에 든 대회가 없었다.
그때마다 세리와 나는 국제전화에서 서로가 “걱정할 것없다”고 말했지만 심정은 정반대임을 우리 부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세리 단 한명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은 삼성물산 아스트라관계자 분들에게 더이상 볼 낯이 없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
아스트라측으로부터 “세리를 당분간 국내에서 쉬게하는게 어떠냐”는 ‘경고’를 전해들은건 지난 9일이었다.
아스트라 안호문이사가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4일 끝난 타이틀홀더스챔피언십에서의 공동 43위 기록(287타)은 ‘세리의 슬럼프’로 단정짓는다해도 할말이 없었다.
경기장이던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LPGA인터내널코스는 바로 6개월전인 지난해 10월
세리가 올시즌 시드권을 주는 퀄리파잉스쿨이 벌어졌던 경기장.
우승했던 그때 기록이 278타였다.
물론 같은 코스에서 하루가 지나더라도 스코어가 크게 변하는게 골프라지만
데이토나비치는 지난해 세리가 데이비드 리드베터로부터 집중훈련을 받았던 올랜도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홈코스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테네시주까지 날아가 치르는 사라 리클래식의 결과는 보나마나로 여길만했다.
안이사는 ‘세리팀’의 총책임자였지만 나를 위로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이 세리의 부진을 분석해보라고 지시했다”며 “계속 성적이 나쁜데 국내로 불러들여 당분간 쉬게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 전했다.
한국의 ‘세리팀’분위기는 대단히 침울했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세리팀’을 잠시 소개하면 안이사를 단장으로 실무총괄 정환식과장, 지원업무 및 의류용품 김동석대리,김경호씨, 디자이너 백규현씨. 여기에 미국에는 매니저인 미국골프기자출신 길성용씨, 캐디 제프 케이블, 그리고 티칭프로 데이비드 리드베터다.
세리와 나까지 포함하면 10 명이 되는 셈이다.
세리가 미국에서 ‘철수’한다면 세리팀은 자동적으로 가동이 중단된다.
“그럴리가 없다. 내딸은 분명 해낼거다.”
시간을 벌어야했다.
안이사에게 “이번대회(사라리클래식)가 끝날때까지 결정은 하지말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세리팀은 그래서 사라리 클래식이 끝나는 날인 11일 하오에 다시모이기로 했다.
11일 새벽 테네시주의 경기장에서 세리를 줄곧 따라다니던 길성용매니저에게서 걸려온 성적은 공동 32위.
이어 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속상해요. 엄마 언니 모두 보고 싶어요.”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려했지만 쌀 한톨이 커다란 돌멩이같았다.
대전 유성집에서 서울의 아스트라사무실로 올라오는 그때의 심정은 사형장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세리였다.
그 시간에 세리는 언제나 나에게 전화를 했으니까.
대답이 없었다.
“세리지? 애비다. 말해봐.”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딸은 울고 있었다. 누구 앞에서도 절대로 울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찢어졌다.
세리는 남들 앞에서 최근에 운 적이 없다.
중학 2학년때까지는 자주 울었다.
그때마다 나는 매몰차리만치 내 사랑하는 딸을 마구 때렸다.
“우는 것은 나약한 거야. 나약하면 절대로 제1인자가 되지 못해.”
‘세리의 눈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나중에 자세히 밝히겠다.
다시 서울로 가는길.
나는 전화에서 세리의 눈물을 느끼는 순간, 또다시 용기를 얻었다.
‘한국의 세리팀’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강력히 건의했다.
아니 그것은 절규였다.
“세리는 잘 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세리팀)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세리는 아직 미국의 환경에 적응이 안됐습니다. 내 딸은 외롭습니다. 향수병에 걸려 있어요. 시간을 주십시요.”
아스트라측도 상당한 분석을 한 것 같았다.
안호문이사가 무릎을 치며 “맞습니다. 세리는 외로웠을 겁니다.
아버지가 달래 주십시요. 그게 해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헤어졌다.
이번 LPGA선수권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내 자신은 LPGA선수권에서 세리가 10위권에 들 것이란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다.
다음날(12일) 세리와 통화했다. 2시간여에 걸친 부녀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였다.
세리에게는 언제나 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 때 처음으로, 사실은 너무 급하고 간절해서 하소연하듯 말했다.
세리에게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신적인 안정, 골프에서 말하는 마인드컨트롤이었다.
“세리야! 내딸아! 피곤한데 무슨 골프를 죽기살기로 할거냐. 2000년이 지나서도 충분해. 아빠는 전혀 걱정안해.
컷오프에서 탈락하기를 이 아빠는 오히려 원한단다. 빨리와서 아빠와 아주 조용한 숲속에서 정답게 놀자꾸나. 낚시질도 하면서….”
세리는 또 말이 없었다.
울고 있었을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애비의 감으로 세리의 마음속에 외로웠던, 보고싶었던 아빠와 가족의 사랑이 전달됐음을 느꼈다.
LPGA선수권을 제패하기 직전까지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박세리의 가장 큰 단점은 퍼팅”이라면서
“프로세계에서 퍼팅이 해결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수없이 지적했다.
TV중계를 유심히 관찰한 분들이라면 세리의 퍼팅때 그립이 크로스핸드형이란 것을 보았을 것이다.
보통 그립은 우선 왼손으로 쥔다음 오른손으로 왼손보다는 그립아래를 감싸는 형태의 역오버래핑형인데 반해 세리는 정반대로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는 형태다.
세리의 세번째 LPGA투어인 하와이오픈때 나는 하와이까지 날아갔었다.
예선 탈락.
그때 세리의 퍼팅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는데 폴로스루때 오른쪽 손목이 꺾이는 것이었다.
헤드업을 안해도 헤드업을 한 모양이었다.
1,2라운드때 3퍼팅을 무더기로 범하는 모습에 미칠 것 같았다.
당장 크로스핸드형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세리는 너무 어색해 했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이것이 이후 몇개대회에서 퍼팅난조를 보인 원인이었지만 세리에게는 이 타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게 LPGA선수권대회 기간중 절박한 상황에서 헤드업형태를 방지해주는 효과를 거뒀다고 본다.
스포츠서울 독자여러분들은 이번 LPGA선수권대회때 최고의 승부처가 어디였다고 보시는지-.
나는 3라운드 18번홀(파4) 파퍼팅과 4라운드 16번홀(파5) 에서의 세컨드샷 순간이라고 본다.
3라운드 17번홀에서 세리는 보기를 범하면서 영국의 리자 해크니와 공동선두가 됐다.보기를 범한 순간 나는 TV화면에서 세리의 당황하는 모습을 읽었다.
18번홀 단 1m30㎝의 내리막 옆경사 파퍼팅때 예비스윙이 빨라졌다.
세리의 심장박동이 평소보다 적어도 10번 이상은 더 뛰는 상황.
나는 “틀렸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들어갔다.
10여분뒤 세리가 현장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우리 부녀는 이구동성으로 “우승이다!”고 외쳤다.
그때 나는 너무 흥분해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었을 실언을 하고 말았다.
“4라운드때는 더 밀어부쳐라. 스윙을 더 빨리, 드라이버샷을 더 멀리 보내 거라.
큰 대회에선 마지막 16∼18번홀에서 승부가 갈린다. 선두는 불안해서 파 플레이로 안전하게 가려하다 미스가 나고
추격자는 오로지 핀만을 노리는 공격적 플레이가 성공했을때 선두가 뒤집히는거야.”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바로 다음말-.
세리는 그때 3라운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다.
최후의 라운드를 몇시간 앞둔 가장 예민한 순간이었다.
나는 세리의 우승을 위한 고비는 3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의 파퍼팅 성공때 이미 종료됐다고 단정했다.
때문에 그 대회 하이라이트인 16, 17, 18번홀에서 ‘한국의 박세리’가 세계정상의 챔피언이란 점을 과시하고 싶었다.
“16번홀(465야드)에선 2온을 시켜 이글찬스를 만들어라. 너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과시하렴. 단 왼쪽러프가 위험하니 어드레스때 오른쪽 발을 10㎝앞으로 내밀어 페이드볼(볼이 낙하때 오른쪽으로 약간 휘는 구질)을 구사하는게 안전하다….”
16번홀 티샷때 세리는 2위인 해크니에 2타나 앞서있었다.
세리는 내 지시대로 오른발을 10㎝쯤 앞으로 내미는 페이드샷을 구사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왼쪽을 겨냥한 탓에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휘기는 했으나 왼쪽러프(B러프)를 1m 남짓 남기고 처박히고 말았다.
남은거리 210야드.
미국의 러프는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10㎝도 넘는 잔디는 골프채를 감아버릴만큼 질기다.
감겼다하면 겨우 100야드 날아가고 악성 훅, 슬라이스가 난다. 2,3타는 순식간에 까먹는다.
오,하나님.
캐디인 제프 케이블이 2온은 틀린 것으로 보고 안전한 탈출로 파플레이를 하도록 아이언을 꺼내주는데도 세리는 이를 무시하고 우드(5번) 를 집어드는게 아닌가.
“안돼 세리야! 내가 한말 취소할게! 아이언을 잡아!”
지구의 반대편 유성에서 TV를 향해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세리가 러프에서 예비스윙을 하는데도 5번우드의 헤드가 풀에 감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 찰라 세리가 뒤를 힐끔 돌아다 보았다.
불안할때 보이는 행동이다.
아버지가 언제나 곁에 있었으니까 아버지 모습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그래, 세리야. 내가 보였지? 쳐봐. 넌 해낼거야.”
퍼펙트샷.
풀에 잠긴 볼이 세차게 맞는 순간 무서운 잔디결을 굴복시키듯 옆으로 *이며 미끄러져 솟구쳤다.
2온. 이글찬스.
세리의 오른손 주먹이 하늘을 향해 불끈 올랐다.
우승이 날아가버릴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었던 상황.
그건 이 애비를 위한 샷이었다.
그 녀석은 그 상황에서도 나의 지시와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리의 16번홀 이글퍼팅은 성의가 없었다.
국내의 시청자들도 느끼셨을 것이다.
‘OK거리’에 접근시키는 아마추어적인 퍼팅이었다.
모든 상황이 사실상 종료된 까닭이다.
간단한 버디.
11언더파로 2위인 해크니와는 3타차로 벌어졌다.
이제 세리는 구름처럼 에워싼 갤러리들을 위한 ‘서비스’만 걱정하면 됐다.
여기에 속속 우승을 확신하는 소식이 들어왔다.
8언더파로 치고 올라오던 도나 앤드류스가 마지막홀에서의 파장면이 비춰졌다.
“공동2위는 하겠군….”
이날만 6언더파, 합계 7언더파의 무서운 기세의 캐리 웹도 17,18번홀에서 각각 3m,4m의 버디퍼팅에 실패해 2위권에서도 탈락.
우승의 희미한 걸림돌마저 완전히 치워졌다.
17번홀(파3) 팅그라운드에 들어서는 딸의 모습은 여유와 예의바른 한국색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3라운때 보기를 범해 해크니와 공동선두가 됐던 그 홀 .
144야드. 7번아이언이었다.
세리는 그 거리의 아이언샷 연습을 수십만번은 했을 것이다.
이미 마음도 안정된 상황.
홀컵 7m옆으로 비껴 멈췄고 약간의 헤드 업도 곁들인 버디퍼팅은 10㎝의 오차가 있었을뿐이다.
파.
18번홀에 들어섰을때 나는 또다른 걱정이 앞섰다.
나와 세리가 이 세상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수없이 꿈만 꾸었던 현실이 바로 눈앞에 너무도 빨리 펼쳐진 현실앞에서 세리는 어떤 제스처를 펼칠까.
가장 한국적이었으면 좋을텐데.
399야드의 파4홀.
드라이버샷을 220야드 날렸다.
약간은 덜 나간 거리.
세리는 전혀 흥분된 상태가 아니었다.
92년 세리가 여중(갈마여중) 3학년때 라일앤스콧오픈에 출전해 당시 아시아스타출신 선배 원재숙프로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첫 오픈대회 우승했을때 세리의 연장전에서의 드라이버샷은 260야드는 족히 날아갔었다.
지나치게 흥분했던 탓이다.
우승을 눈앞에 두면 스윙이 빨라지게 마련인데 세리의 18번홀에서의 ‘우승스윙’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교민들의 태극기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고마우신 분들! 나도 흥이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20㎝의 우승 파퍼팅을 남겼을때 세리는 마치 우승을 한번도 안해본 것처럼,
한국에서 날아온 너무 착하고 순진한 촌색시처럼 볼앞에서 엉거주춤 손을 떠는 자세를 취했다.
“오, 잠깐 세리. 넌 챔피언이야.”
세리보다 열살 언니 해크니가 자신이 먼저 홀아웃하겠다며 비켜서게 했다.
“저런 것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에게 고맙다고 속으로 연신 외쳤다.


Kapires
푸우
슈퍼루키

아.. 벌써 11년전 일이군요..ㅠ.ㅠ;;
지금의 리사홀을 보면.. 당시에 우승을 다투던 선수라는게 실감이 안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