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독자들은 필자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촌구석에서 딸에게 골프를 가르치게 됐는가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할 것같다.
사실 유성이외의 지역에서 만나는 분들에게서 심심찮게 이 질문을 받았다.
난 간단히 대답할 수가 없어 “그냥 좋아서 가르쳤어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난 돈을 벌고 싶어 딸에게 골프를 가르쳤고 그게 내 운명을 바꾸게 됐으며 결국 세리와 아내 내 딸들이 잘 살게 됐다.
독자들께는 처음 밝히지만 나는 ‘주먹’출신이다.
세리는 아버지가 주먹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때문이라며 자신이 돈을 벌어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았다.

86년 여름이었다.
‘보스’의 심부름으로 찾은게 유성CC였다.
산속에 잔디를 깔아놓고 ‘빨뿌리’(담배 파이프 속어=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양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는지 이해가 안갔다.
대선배되는 ‘주먹’이 한가롭게 라운딩하며 내기골프를 치는데 그게 도박골프이었다.
두, 세번 보다가 “나도 해야겠다”며 ‘벤호간 아펙스’ S(Stiff=샤프트가 일반클럽보다 한단계 강한 것)를 갖고 연습장에 갔는데 그때가 밤 12시였다.

잠자는 레슨프로를 깨워 새벽 4시까지 레슨을 받았다.
곧바로 유성CC로 향하던 도중 지금의 계룡대 인근 개울에서 목욕을 한뒤 첫팀으로 티샷했다.
하루 밤새에 골프를 배워 그날 아침 ‘머리’를 얹은 것이다.

다음날부터 나는 유성CC와 연습장을 오가는 생활을 6개월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1개월만에 100을 깼고 2개월만에 80대에 진입했다.
11월인가 첫눈이 내릴 무렵 78타를 기록했다.
골프채를 잡은지 6개월 쯤 되던 날이다.

나는 순전히 내기골프를 위해서 연습을 했고 돈을 따는 것보다 잃는 날이 더 많았다.
그때 우리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야만 할 상황이 됐다.
당시 대전을 포함한 호남지역에선 거대조직 폭력배를 범국가적으로 소탕할 무렵으로 조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을때였다.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의 세리,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애리를 데리고 하와이로 ‘피신’했다.
아내와 세리는 거기서 3년을 지냈고 나만 6개월만에 귀국했다.
하와이생활 때 나는 세리에게 골프채를 쥐어 준 적이 있는데 단숨에 볼을 띄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딸에게 골프를 가르칠 상황이 아니었다.

세리도 골프채를 잡고 놀다가 남의 집 창문을 깨버리는 바람에 3년뒤 귀국, 유성초등학교 6학년으로 복학할때까지 골프채를 쥐지 않았다.
세리는 77년 9월28일 태어났다. 3녀중 둘째딸이다.
세리가 태어날때부터 특히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애비로서 너무나 무성의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주먹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는 아내(김정숙 45)가 세리를 임신했을 때도 가족을 돌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충청 호남지역의 ‘주먹세력’다툼이 아주 심했을 때다. ‘동생’들을 다스리는데 나는 정신이 팔려있었다.
드러내 놓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유성을 떠나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전남 송정리로 피신한지 1주일만에 세리를 낳았다.
병원 갈 처지가 안돼 조산원에 달려가 뒤늦게 탯줄을 끊는 등 “도대체 내가 아버지인가”는 자책감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대전지역이 ‘평정’돼 1주일만에 핏덩이를 안고 유성으로 돌아왔다.

 난 세리를 낳기 전날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아내에게 말하자 “세리가 성인이 되기전에는 절대로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네발 달린 번쩍번쩍 빛나는 가물치가 무리들 틈에서 휘젖고 다니는데 주위의 가물치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꿈이다.
해몽가에게 물어봤더니 “사내가 아닌게 너무나 아깝다”면서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을 해낼 꿈”이라고 말해주었다.

하나 더. 세리의 왼쪽손금은 딱 한줄이다.
내 주위에서 세리같은 손금을 본 적이 없다.
어릴때 동네 노인께서 세리의 손금을 보시면서 놀란 모습이 기억난다.
세리는 커가면서 자기손금을 의식적으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세리는 그야말로 험하게 자랐다. 언제나 온몸에 성한 데가 없었다.
여자는 상대가 없어 남자아이들하고 싸우곤 했는데 ‘임자’를 만나면 실컷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리가 우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일그러졌는데도 분한듯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오곤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이 애비의 어릴때와 똑같을까.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겠지만 세리는 어릴때 진짜 개구쟁이였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세리는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났고 임신때 아내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기는 커녕 남편의 얼굴도 어쩌다 볼 수있을 정도였으니 ‘건강하게 자라기는 틀렸다’고 체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8개월만에 걸어다니고 잔병없이 쑥쑥 자라주니 눈물이 나도록 고마울 지경이었다.

홍역에 걸렸을때다. 추운 겨울이었다.
세리의 얼굴엔 빨간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엄마가 안아주는데 답답했는지 내복바람으로 뛰쳐나가 동네를 돌아다녔다.
열이났던 까닭이다.
동네사람들이 “딸 얼어죽인다”며 걱정했지만 세리는 지금도 겨울철에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는다.

노는 것도 도무지 겁이 없었다.
천방지축,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드는가 하면 아무데서나 뛰어내리고, 그래서 무릎이 깨지고….
아무튼 아내는 세리의 행동이 너무나 돌발적이어서 한동안 붙어다녔지만 초등학교 다니기 전인데도 세리는 아내가 쫓아갈 수없을만큼 빨랐고 큰 사고나 잔병이 없어 그러려니 지나치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세리가 시름거렸다.
구역질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걱정이 된 아내가 다그쳤지만 대답도 안했다.
아내는 ‘동네 남자아이들과 싸우다 가슴을 두들겨 맞았거니’여겼다.

세리답지 않은 나약한 행동이 몇시간째 계속되자 아내가 세리 잔등을 세게 후려쳤다.
목구멍에서 어린이 놀이용 구슬이 툭 튀어나왔다.
웬만한 고통은 말을 안하는 것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게 어린 세리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세리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유성초등학교 6학년일 때의 가을이다.
세리를 데리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클럽을 쥐어주고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이니 너도 해봐라”며 기초스윙자세를 가르쳐주었다.
2년전 하와이에서 잠깐 잡은 적이 있은뒤 처음.
그때 흥분과 함께 세리의 반짝거리던 눈빛이 기억에 새롭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것을 함께 하고 있다”는 흥분에 세리는 즉시 골프에 빠져들었다.
세리 골프운명의 시작이다
난 사실 아들을 두고 싶었다. 강인하고 예의 바르고 의리있고 우직한 그런 남자상으로 키우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딸만 셋.
 
지금은 자랑스럽지만 난 세리에게 남자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너무나 많이 요구했고 세리는 이날 이때까지 단 한마디 불평없이 따라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스런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딸을 위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치면서 느꼈다.

주먹세계의 잔인한 상황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내가 세리앞에서 만은 수없이 울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쳐 준지 며칠 뒤의 일이다.
“연습해보라”고 한뒤 친구들과 술자리를 했다.
밤늦게 집에 전화를 했는데 세리가 안들어왔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연습장에 가봤다.
저쪽 구석에서 세리는 형광등 하나만 달랑 켜놓고 볼을 때리고 있었다.

섬뜩했다.
내가 골프를 배우기 시작할때와 똑같은 장면-.
나대신 그 자리에 세리가 서서 볼을 때리는게 다를 뿐이었다.
“아빠는 여기(연습장)에서 밤을 새워 훈련한 적이 많았어….”
세리도 그렇게 했다. 아빠가 했으니까.

세리의 스윙은 1주일만에 볼이 곧게 뻗어나갈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그렇다고 세리가 천부적인 골퍼란 얘기는 아니다.
체력은 타고 났는지 모르지만 후천적인 요인이 더 많다.

세리는 골프를 잘 칠 수있는 육체적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마음껏 뛰어놀았고 방과후 육상선수로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포츠종목은 다양하지만 기술이나 요령면에서 연관성이나 공통점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세리가 뛴 종목(육상 단,중거리 투포환 허들)이 골프와 깊은 연관성이 있고 거기서 발달된 근육이 그대로 골프스윙에 결정적으로 적용할 수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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