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박세리' 인터뷰

4~5승씩 할 땐 무덤덤…이렇게 많이 격려해주니 우승만큼 값진 2등 실감

한때는 나만 신경 쓰다 요즘엔 후배한테도 배워 결혼? 말만 말고 소개좀…

"잘 지내셨어요? 저 박세리예요." 9일 오전 씩씩한 목소리로 박세리 선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미국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 인근 호텔이라고 했다. 이번 주 열리는 메이저대회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 시간 밤 10시였다.

평소 몇 차례 전화를 걸어야 어렵게 연결되고, 좀처럼 먼저 전화를 걸지는 않는 스타일이어서 기자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박세리는 8일 끝난 미 LP GA투어 스테이트팜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세리 키드'인 김인경에게 1타 뒤져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골프팬들은 세리의 선전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부활의 비결'이 궁금해 기자가 전화를 걸었는데, 박세리 선수가 전화를 되걸어온 것이다.

"슬럼프 덕에 세상이 다시 보여"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내일 오전 8시 아마추어들과 함께하는 프로암 출전 준비를 끝내고 곧 잠자리에 들 것"이라고 했다. "대회 끝나자 또 시작이네요. 프로 생활이 지겹지 않으냐"고 하자, "그럼 매일 회사 출근하는 건 지겹지 않으세요. 호호호"라는 반격을 가해왔다.

박세리는 "준우승을 한 뒤 저를 아는 모든 분이 연락을 해온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은 격려전화를 받았다"며 "제가 잘하니까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제가 1년에 4~5승씩 해낼 때는 오히려 행복하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너무 어려서부터 선수생활을 해서 그런지 공 치는 것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고요. 그런데 준우승을 했는데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요. 우승만큼 값진 2등이란 말을 이제 실감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점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온통 저만 신경 썼어요. 남들이 뭘 하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아무 관심이 없었죠. 다른 선수들에게는 제가 정말 '밉상'이었을 거예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셋인 박세리는 긴 슬럼프를 거치며 그만큼 성숙해 있었다.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지면서 주변과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전부나 다름없는 골프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 스윙 비결요? 그런 거 없어요. 저는 요즘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너 어쩜 그렇게 잘 치니, 어떻게 치는 거니' 하면서 배워요. 그렇게 제가 '열린' 게 비결이랄까요?"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서 미 LPGA 데뷔 직후에 쓰던 퍼터를 사용했다. "올해 다른 샷에 비해 퍼팅감이 잘 안 왔어요. 그래서 4년간 10승 정도 한 이 퍼터를 집에서 찾았어요. 저는 쓰던 클럽을 모아 놓는데, 퍼터만 100개가 넘는 데서 간신히 찾았어요. 이번엔 퍼팅이 잘 떨어졌죠."

"은퇴는 다시 해낸 뒤 생각"

그녀는 2004~2005년의 첫 슬럼프에 이어,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어떻게 주말 골퍼처럼 치느냐는 비아냥과 '악성 루머'들이 떠돌았다. 밤늦도록 술을 먹고 다닌다는 소문과 각종 스캔들이 한 시절을 풍미한 골프영웅에게 비수처럼 쏟아졌다.

"소문대로라면 제가 매주 경기에 어떻게 나가겠어요. 미국에는 선수의 슬럼프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에요. 우승하면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못하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그녀는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겠죠"라고 했지만 속상한 음성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이런 박세리에게 결혼과 은퇴에 대한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결혼하면 공이 더 잘 맞을 거라는 분들이 있는데, 말씀만 하지 마시고 소개 좀 해주세요. 저 안 까다로워요. 저를 잘 이해해 줄 수 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녀는 "남자친구들은 있는데 아직 결혼 상대는 없다"고 했다.

"은퇴는 제가 납득할 수 있을 때 할 거예요. 제가 다시 한번 (우승을) 해낸 뒤, 필드를 후배들에게 멋지게 물려주고 싶어요. 그런 뒤엔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영원한 골프인으로 살고 싶어요."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맨발의 우승'을 이루며 해맑게 웃었던 박세리, LPGA 투어 24승으로 한국에 골프 붐을 몰고 왔던 그녀가 이제 '멋진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민학수 기자 haks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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